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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 drawing 무작위의 기술, Oil on canvas, 203 x 107cm, 2018 © Parkmirae
Random drawing 무작위의 기술, Oil on canvas, 203 x 107cm, 2018 © Parkmi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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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tail View _ Passed down from Grand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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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할 수 없는 / CONFRONTATION
임경민(LIM Kyoungmin)
평온하고 당연해 보이던 모습 안에 도사린 냉랭함을 느꼈을 때 나는 이것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 볼 것인가 아니면 스쳐지나가는 풍경처럼 기억의 저편으로 떠나보낼 것인가 고민한다. 그러나 이 고민은 사실상 부질없다. 처음부터 외면할 수 없었다면 어차피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멈춰 서서 누군가를 측은히 여기기엔 도처에 잔혹하고 냉담한 일들이 가득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감정이 일어난 마음을 어쩌지 못할 때가 있다. 차창 밖으로 스쳐간 풍경처럼 여기려 해도 불쑥 마음에서 비집고 나오곤 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작가 박미례와 나일 크레이븐의 작품에서 그들이 기억 저편으로 스쳐 보내지 못한 생각과 그것에 관한 이미지들 그리고 두 작가의 닮은 듯 다른 태도를 만난다.
생물은 그 개체의 특징을 드러내는 본연의 모습과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습성을 지닌다. 박미례 작가는 작품에서 많은 동식물들이 처해있는 현재를 표현한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난폭하고 때로 슬프고 부조리한 이유를 가지는 모습과 그에 대한 생각이 구상과 추상으로 드러난다. 도시에서 만나는 숱한 길고양이들, 수족관에서 관상을 위해 사육되거나 혹은 식용으로 생명이 유지되고 있는 바다생물들은 그 인공의 척박함 안에서 살아있는 현재를 유지하기 위한 삶의 방식들을 학습하고 수용한다. 날카로운 이빨도, 뿜을 수 있는 독도 없고 오로지 달려 달아나는 것으로 적자생존의 구조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사슴은 기껏해야 머리에 있는 뿔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 뿐이다. 비교적 상위포식자인 늑대나 곰의 현재는 여유로운가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날카로운 이빨과 힘 그리고 위협적으로 크고 긴 발톱은 무리를 위해 단체로 사냥을 해야 하는 점과 크고 힘센 만큼 많이 섭취해야하지만 재빠르지 못하다는 단점에 상응하는, 생존을 위한 장점인 것이다.
각자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나가는 동물의 모습과 행동이 작가 박미례의 화면 중 구상의 영역에 표현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기에, 분이 솟는 만큼 발버둥 치며 울어내지 못하기에 드러낼 수 없는 그래서 속으로 파고드는 치열함이 삶에 가득한 그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과 작품을 그리는 때 도달하는 고요에서 나타나는 표현의 욕구들은 그 외 화면 안에서 개별적인 동세와 무작위의 형태를 이루어낸다. 작가의 유화작품들 중 구상 외 영역에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색의 조합과 붓의 사용에 따라 형성되는 강세는 수렴과 발산 그리고 역동적인 형태 중간에서의 급작스러운 단절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화면 전반에서 휘몰아치고 내리꽂히거나 솟아오르고 급격히 고요한 부분들이 동시에 나타나는데 동물의 형태와 함께 하나의 작품에서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작품의 주제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이번 전시의 출품작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다>에서 이전의 작품보다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색의 아름다움, 처연해 보이는 동물의 모습과 그것을 둘러싼 붓의 사용이 주는 감각은 매우 강렬해서 그 각각의 간격이 작가가 대상에 대해 가졌을 감정에 이입할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작가는 화면에 동물을 그리지만 그들을 접하게 된 사회적 계기, 1차원적인 미감(일반적으로 그 동물의 미적 특성을 규정짓는 내용들)에는 크게 애착을 가지지 않는 듯하다. 그보다는 그들이 겪는 생사를 가르는 난관들과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삶을 사는 그들에 대한 생각을 외면하지 못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 작가의 마음 어느 곳엔가는 항상 그들에 대한 생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잠들지 못하는 밤의 고독함에서도, 팟캐스트를 통해 듣는 시의 정서에서도 나타나 작품에 자리 잡는 그들은 사람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우화가 되기도 하고 모습이 다른 내 자신이기도 하다. 작품 <곰들>, <야경꾼>, <소>는 각각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작가가 일상에서 겪게 되는 일들을 풀어내었다. 특히 시인 김기태의 시 <소>*의 낭독을 듣고 그리게 된 작품으로 해당 시를 읽으며 마주하는 작품 <소>는 나를 소처럼 느끼게도 하고, 답답한 내 현실이 시에서 서술하는 소의 모습인 듯도 하다.
형식은 다르지만 작가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선의 강렬함과 그에 호응하는 듯한 서정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데, 이는 대상을 외면할 수 없는 그래서 자꾸 떠오르고 결국 그리게 되는 작가의 마음의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의학서적이나 자료들에서 다루는 사람의 몸은 의료행위를 위하여 ‘객관성’을 요구받는다. 그 자료 안에서 물리적 수치와 형태, 과학적 용어로 서술되는 몸은 하나의 사례로서 존재할 뿐 삶을 살아온 어떤 한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작가 나일 크레이븐은 다수의 의학서적을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며 상처와 질환, 그에 대한 처지에 대한 이야기들과 사람의 몸이 이미지로 다루어지는 형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의 초기작에서는 상처의 형태를 보이는 신체를 볼 수 있고 비교적 구체적으로 몸을 묘사했었지만 점차 단순화되었고 형태는 더 자유로워졌다. 화면에 기호가 추가되었고 형상에 앞서 대상에 대한 작가의 감정을 전달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색의 사용에서도 큰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사지의 표현으로부터 토르소를 중심으로, 최근작의 다른 의미를 보이는 손과 발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보이는 그의 현재 작품에서 우리는 벌어진 상처나 장기, 뼈와 근육을 볼 수 없지만 불가사의하게도 어떤 신체적 감각을 상상할 수 있다.
작가는 객관화 된 신체에 주관적으로 다가섰다. 의학서적 내의 사진 혹은 그림 안에 존재하는 신체를 그냥 하나의 사례로만 볼 수 있었다면 지금 그의 작품은 매우 달랐을 것이다. 주관의 개입은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겠지만, 현재 그의 작품이 달라져 가는 흐름을 보자면 그는 조금 더 다가서는 방식으로 주제를 향하는 듯 하다. 사진에 찍힌 객관적 목적의 신체도 역시 어느 사람의 것이고, 그 사람은 경험과 감정을 가지고 정확히 종류를 알 수 없지만 분명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대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그가 설명한 하나의 사례로 알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어종을 발견하면 기록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경우 보이는 그대로만 그리는 것은 그 물고기 전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마 우리가 그 물고기의 특징에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그 물고기를 알게 되는 것 이상의 이해 혹은 헤아림이 가능할 것이다. 처음 그의 작품을 보았을 때 “(물리적인/감정적인) 통증을 헤아린다”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아마도 이러한 그의 태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토르소 작품과 선과 색과 기호로 이루어진 드로잉 형식의 작품은 신체를 표현하는 방법에서 매력적인 색은 여전하면서 선과 붓의 사용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오로지 검은 선으로만 그린 작품에서는 면으로 구성된 화면과는 상반된 선의 강점이 드러난다. 더욱 최근의 작품은 크기는 작지만 드로잉보다 회화에 가깝다. 닫히지 않고 선으로 표현된 신체는 배경 위에 얕게 표현되었다. 대상에 대한 감정적인 표현으로 느껴지던 기호는 그리드처럼 배경이 되어 신체 외의 영역 전반에 자리 잡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에서 이전보다 배경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사용하는 색조의 변화가 큰 가장 최근작품에서 드러난다. 작품 <Figure Lying on a Bed>와 <Figure on Stool>은 각각 누운 자세의 한쪽 발과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모두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배경을 하나의 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발과 손이지만 어떤 상황에서의 발과 손인지는 보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고 작품을 말해주는 것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배경인 것이다.
영문 전시명을 정하면서 자신의 작품과 전시의 기획의도, 한국어 전시명을 감안했을 때 가장 원하는 뜻에 가까운 단어나 어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양한 후보를 떠올렸으나 마지막에 ‘직면’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Confrontation'를 제시했다. 이 단어는 작가의 작품이 보이는 변화를 고려할 때 매우 흥미로웠다. 대상에 대한 두 작가의 유사하지만 다른 태도가 바로 이 전시의 국문과 영문에서 드러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대상들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찾고 더욱 뛰어난 묘사를 위해 노력한다기보다 외면할 수 없었던 대상이 작품으로 나타나는 두 양상을 보여준다. 구상과 추상, 역동과 고요가 공존하는 유화와 묘사력이 돋보이며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인 목탄과 콩테로 그린 박미례 작가의 작품들은 일상 중에 불현듯 작품으로 이어지며 점차 깊이를 더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일 크레이븐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는 형식면에서 드로잉에서 회화의 성격으로 이행하면서 일어나는 색과 선, 면의 표현의 변화를 볼 수 있으며, 일종의 측은지심을 일으키는 대상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작가가 형성하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